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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연인과의 혹은 부부간의 사이가 멀어진다고 느끼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에요. 처음 인연이 시작될 때에는 미묘한 긴장감과 함께 뭔가를 같이 하면서 그 추억들이 쌓여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일을 반복하고, 데이트를 해도 매일 똑같이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 등 같이 해서 좋지만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어요.

 

연인과 함께 새롭고 좀 자극적인걸 같이 하면 연인간의 관계가 멀어지는 걸 줄일 수 있을까요?

 

오늘의 논문은 이에 대해 연구했어요.

Aron, A., Norman, C. C., Aron, E. N., McKenna, C., & Heyman, R. E. (2000). Couples' shared participation in novel and arousing activities and experienced relationship qual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8, 273-284.

 

오늘의 주제를 들었을 때, "당연히 새롭고 자극적인 걸 함께 하면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혹시 들진 않았나요? 이 당연한 걸 왜 연구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당연한 것 같아도 당연하지 않아서 그래요. 예를 들어볼게요. 뭔가 새롭고 자극적인걸 함께 하면서 예전의 추억들이 되살아났어요.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같은 기분이 들고, 그때의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요. 그런데 지금의 나를 보니 그 혹은 그녀를 전처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럼 전보다 사이가 더 나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실험 1 & 2.

결혼을 했거나 동거를 하고 있는 연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예요. 연인과 함께하는게 신이 날수록(exciting) 지루하지 않고(boredom), 지루하지 않을수록 관계의 질이 좋은 것으로 나왔어요. 

 

실험 3.

커플들을 초대해서 실험을 진행했어요. 먼저 커플을 찢어서 각각 다른 방에 들어가게 하고 관계의 질에 관한 여러 가지에 대해 답하게 한 후, 다시 같은 방으로 불렀어요. 이제 커플은 같은 방에서 새롭고 흥미로운(novel-arousing) 혹은 지루한(mundane) 실험에 참여하게 했어요. 새롭고 흥미로운 실험에서 커플들은 손과 발을 묶어 매트 위에서 기어서 가게 해요. 기어갈 때 반드시 배게를 같이 옮겨야 하는데, 이때에 손이나 팔, 이빨을 사용할 수 없어요. 그리고 이 매트 위에는 1미터 높이의 장애물을 설치했고, 커플들이 기어서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저 장애물을 반드시 넘어가야 해요. 지루한 실험은 매트 위에서 연인 중 한 명이 매트 중앙으로 공을 굴리고, 나머지 한 명은 반대편에서 기어서 공을 주워서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가요. 이걸 7분 간 반복하게 돼요. 글 읽는 것도 지루하네요. 이 과정을 마친 후에 다시 관계의 질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어요. 그 결과 새롭고 흥미로운 실험을 한 커플들의 관계의 질이 향상되었어요.

 

실험 4.

이 실험은 결혼한 커플만을 대상으로 했고, 통제 그룹(no-activity control) 역시 추가했어요. 이 그룹은 그냥 다른 방에서 계속해서 설문조사를 진행했어요. 지루한 실험을 한 그룹과 통제 그룹의 관계의 질 변화는 차이가 없던 반면에 새롭고 흥미로운 실험을 한 커플들의 관계의 질은 다른 두 그룹에 비해 유의미하게 향상했어요.

 

실험 5.

결혼한 커플을 대상으로 했고, 이 실험은 실험 3을 기초로 연인 간의 대화 과정을 추가했어요. 새롭고 흥미로운 혹은 지루한 실험 전과 후에 대화를 하게 했는데, 하나는 휴가 계획을 함께 새워보라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만약 돈($15,000 약 1,800만 원)이 주어진다면 집을 개선하기 위해 뭘 할지 얘기해보라는 거였어요. 이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을 하고, 이걸 나중에 코딩을 하게 돼요. 이 코딩 과정을 통해 연인 간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적대감을 얼마나 드러내는가 그리고 얼마나 잘 들어주는가?(active listening, acceptance, etc.)를 판단해요. 이걸 계산해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관계의 질을 측정했어요. 그 결과 새롭고 흥미로운 실험을 한 부부들의 관계의 질이 다른 부부들보다 더 크게 향상했어요.

 

요약하면, 새롭고 흥미로운 뭔가를 연인과 같이 하면 관계의 질이 개선된다는 실험 결과에요. 좀 아쉬운 점은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통제 그룹이 no-activity group이 아니라 새롭고 흥미롭지는 않지만 즐거운 뭔가를 같이 하는 그룹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짧은 영화 클립을 함께 본다거나, 서로 잘 아는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거나. 물론 다른 요소들이 개입할 여지가 있지만 "새롭고 흥미로운(novel and exciting/arousing)"의 요소를 배제하면서 "즐거움"을 남기는 그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롭고 흥미로운 게 단순히 즐거워서 관계의 질이 좋아졌을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왜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힘든 실험이었어요. 비록 이 논문은 이런 활동들이 지루함을 줄여주고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요.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도 설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신체적인 활동으로 심장 박동이 올라가고, 빨라진 심장 박동으로 인해 마치 다시 사랑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드는 거죠. 그리고 만약 지루함과 흥미가 이 논문의 키 포인트라면 단순히 재밌는 활동이 관계의 질을 높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즉, 새롭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죠. 

 

그래도 이 논문이 흥미로운 점은 우리의 연인 관계가 왜 시간이 지날수록 안 좋아지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서에요. 만약 계속해서 연인들을 자극할만한 뭔가가 존재한다면 관계가 오래 좋게 지속될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서로 다른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사랑을 한다면,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논문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몇 달 전 한 학회에서 지루함에 대해 연구하는 한 한국 학생을 만났는데 그분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논문이기도 하네요.

 

만약 연인관계가 권태기에 빠지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새로운 뭔가를 해보세요.

 

맨날 소주에 곱창만 먹었다면 와인을 마시러도 가보고, 매일 영화만 보러 갔다면 연극을 보러도 가보세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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